6/9/09 "하나님! 이건 아니쟎아요."
아침에 아내와 아들 딸들이 출근하느라 부산스러운 소음을 들으며 잠이 깨었습니다. 어제 저녁 MOM 월례모임에 참석하여 선교사로 헌신하게된 과정을 간증하고 돌아온 기억과 함께 내 진심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는 자책이 밀려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이제는 간증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 자리까지 인도하셨는가를 증거해야하며, 성경에 근거하여 내 인생 전반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앞으로는 간증을 자제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희망없는 고려인들의 삶에 도움이 되기를 기대하며, 방황하는 젊은이들에게 부모가 되어 주겠다고 어제 저녁에도 어눌한 목소리로 많은 분들 앞에서 간증했습니다.
제가 세르게이라는 고려인 청년을 만난 것은 2002년 여름 제인생의 첫 단기선교로 방문했던 연해주 미하일로프카 은혜교회였습니다. 이마을 저마을에서 모여드는 10대 청소년들을 돌보는 청년으로, 한국말은 못했지만 따스하고 붙임성있는 성품으로, 그의 사역을 내가 마음에 품게된 동기가 된 찬양사역자였습니다. 매년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돈벌이를 위해 타지로 떠나가는 청소년들을 가슴 아파하는 그를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더욱 그 곳 청소년들의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었습니다.
2008년 2월 방문시에 김동학 선교사님과 릴리야 전도사와 그의 집을 찾았습니다. 고려인 아버지와 러시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나쟈라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아내와 가정을 꾸미고 애비를 빼어닮은 2살배기 아들과 함께 마냥 행복해 보였습니다. 그 혹독한 추위의 연해주의 밤이 새도록, 우리 다섯은 고려인 청소년들의 미래와 꿈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구체적으로 흩어진 청소년들을 다시 교회로 모으는 일과, 향기나는 숲이라는 크리스챤 카페를 세울 계획까지 세우며, 내가 선교사로 오게되면 힘을 합쳐서 일하기로 의기투합 했습니다. 돌아와서 선교사훈련을 끝내고,선교사 파송식까지 마치고 출국 수속을 하면서도, 이곳저곳 나의 꿈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할수있는 자리에 설때마다 세르게이와 김동학 선교사님과의 그해 겨울밤의 대화를 이야기 했습니다. 하나님이 엮어주신 인연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시작도 안한 러시아 선교사역이 온통 핑크빛 희망으로 가득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시작도 안한 우리의 계획이 여기까지 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하며,그 누추하고 가난하고 얼어붙은 동토 연해주를 사랑하며, 젊은 영혼들을 가슴에 품었던 세르게이의 피우지도 못한 꿈의 끝이 여기까지란 말인가요? 며칠전 김동학 선교사님으로 부터 급한 이메일을 받았습니다. 세르게이가 뇌혈관이 부풀어 올라 러시아 응급실에 실려 갔으나 중한 상황이라 급하게 배편으로 한국으로 나가 수술 받기로 하고 GMP의 도움으로 한국 병원에서 수술을 위한 검사를 받는다는 내용의 기도부탁이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황당했습니다.
하나님! 우리들이 꿈꾸던 모든 것이 개꿈이란 말인가요? 작년에 허망하게 우리 곁을 떠나가신 송영학 선교사님을 생각 했습니다. 돌아가신 다음날 비자와 비행기표를 받아들고 오열하시던 송은화 집사님도 생각했습니다. 아직 30도 안된 세르게이의 아내 나쟈와 아들, 그리고 이제 6개월된 어린 딸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었습니다. 걱정은 됐지만 그냥 쉽게 기도하라시는 하나님의 경고정도로 생각하고 치료비에 도움을 줄 수있는 방법을 장로님과 해선개 스텝들과 의논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아침, 가족들이 일터로 떠나가고, 컴퓨터를 켰습니다. 한국으로 세르게이를 데리고 가신 김동학 선교사님을 대신한 엄인경 사모님의 절망적인 편지였습니다. 수술은 어렵고, 죽음을 예비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서로 기도부탁을 하며 그냥 쉽게 금전적인 도움을 모색하지요.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하면 늘 간과되는것은, 부탁하는 편의 미안함과 도움을 결정하는 편의 사무적인 대응입니다. 나 또한 그러한 상황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기도 부탁에 건성으로 기도하겠다고 대답하곤 잊고 살았으며, 물질적 도움의 부탁엔 그자리를 떠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난감한 이 상황에서 여러분의 기도를 부탁합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세르게이와, 그의 수술을 위해 농번기 현지 영농사역을 뒤로하고 세르게이의 치료를 위해 수고하시는 김동학 선교사님의 수고와, 어린 두아이와 막막한 앞날을 생각하며 좌절하는 나쟈와, 이렇게 러시아에서 서울로 와 헤매이는 모두를 바라보며 눈물로 기도하는 엄인경 사모님의 슬픈 좌절을 기억해 주십시요. 김동학 선교사님 부부의 고려인들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눈물을 보며, 선교사는 현지인들의 삶속에 동화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제 떠날 날이 다가 올 수록 두렵고,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주권아래 순종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삶이지만, 세르게이의 현실은... 하나님! 정말 이건 아니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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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1/09 "아! 브니엘의 찬란한 아침 햇살..."
마치 야곱이 얍복나루에서 하나님과 씨름을 하듯 어제 하루를 보냈습니다. 이곳 저곳 기도 부탁을 드리고, 한국과 인터넷으로 전화로 연락을 하며 세르게이의 상황을 애타게 바라보았습니다. 솔직히 하나님에 대한 원망도 많이 하였습니다. 아직 사역지로 출발도 하지 못했는데 이게 웬일입니까하며 하루를 눈물로 지냈습니다.
아침 나절, 지난 "파송 후원의 밤"에 오셔서 축도해 주신 나침반교회 민경엽 목사님께 감사드리기 위하여 귀한 만남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우리는 헤아릴 수 없지만 기도하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을 기다려 보시면 좋은 결과로 인도 하시지 않을까요?" 목사님의 위로가 공허하게 들렸습니다. 정말로 그때까지는...
수술이 시작될 즈음 뒷뜰에서 꽃이 마른 제라니움을 정리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불과 며칠 동안에 일어난 세르게이의 불행(?)의 반전을 위해 나의 기도의 모습은 과연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진실 했을까... 기도 부탁받은 믿음의 동역자들은 몇명이나 세르게이의 현 상황을 위해 기도하고 있을까... 나는 남의 기도 요청에 얼마나 충실하게 동참 했었는가... 우리는 우리가 하고있는 기도의 응답에 대해 얼마나 확신을 갖고 있는가... 하나님은 이렇게 무력한 우리의 기도를 시험하고 계신건 아닌지...
그러나 생각의 끝은 결국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기울어지고 있었습니다. 세르게이가 만약에 잘못된 결과에 이른다면 어린 아내 나쟈와 두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꿈의 나라 한국으로 수술 받으러 떠난것 만으로 좋은 결과를 당연함으로 기대하고 있을 많은 미하일로프카의 고려인들의 상처 받을 기대감은 또 어쩌란 말인가... 특히 내가 가서 하려했던 사역은 펴지도 못하고 접게 되는것은 아닌가...
김동학 선교사는 울고 있었습니다. "곽 선교사님! 어떻게 하나님은 이러실 수가 있죠? 결과는 3-4일 두고 봐야 하지만 검사시 우려했던 동맥 주위에 작은 혈관들이 없어서 일단 수술은 잘 되었는데요. 선교사님 혹시 기억하시나요? 2002년 첫 단기선교 오셨을때 같은 팀으로 오셨던 Dr.김영준 집사님, 척추 디스크로 걷지도 못하던 따냐를 한국으로 데려다 수술해 주셨던 분, 세르게이 수술이 끝나고 환자가 낯이 익은데 어디서 오신 선교사냐고 물으셔서 대화하던 중 연해주 선교지에서의 인연을 알았구요. 바로 그분이 수술을 집도 하셨어요.그분이 이 분야 전문가세요."
세상에... 신경외과 전문의. Dr. 김영준 집사. UCLA에 교환교수로 미국에 체류했던 시절, 몇 년간 같은 교회를 섬길 때, 임기가 끝나고 귀국하면서 함께 연해주 선교팀으로 봉사하시고 떠나신 그 분. 환자들에게 증상만 확인하고 지속적인 치료를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 환자를 한국에 데려다 완치시켜 주셨던 바로 그분이 세르게이를 수술하실 줄을 그 누가 상상을 했을까요. 너무나 갑작스러운 반전이 혼란스러워 불행하게도 나의 믿음은 아직도 세르게이가 안전하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지만, 수술 현장의 김동학 선교사님은 안도의 울음를 울고 계셨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고 정신을 차린 후에 2002년 선교에 동참했던 교우들에게 연락을 하고나서 현 상황을 다시 돌아 보았습니다. 갑작스런 광풍에 죽겠다고 소란을 떨던 제자들을 기억 하시나요? 물결을 꾸짖으시며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 잔잔히 말씀하시던 예수님(누가복음 8장22-25)이 갑자기 생각 났습니다. 떠나기도 전에 세르게이 수술을 통해 저의 얕은 믿음이 들통난 심정이었습니다. 세르게이 뒤에 Dr. 김을 예비하신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허둥대며 절망했던 몇일간의 삶이 남새스러워 이제 어찌 교우들의 얼굴을 보나 걱정도 되었습니다.
곧이어 "하나님이 하셨어요"라는 엄인경 사모님의 눈물과 환희의 이메일이 도착하고 나서야 하나님이 우리들, 김동학 선교사 부부와 우리 부부와 고려인들과 피보다 진한 사랑으로 하나되게 하신다는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전화로, 이메일로, 눈물로, 콧물로 슬퍼하며 기도를 부탁하고, 말하기 힘든 수술비 후원을 모색하며 가슴 졸이던 모든 일들은, 정말 세르게이를 사랑했고, 그 어렵고 힘든 고려인들의 고단한 삶에 동참하고싶은 하나님이 주신 긍휼의 눈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기분은 하나님과 밤새 씨름한 야곱과 함께, 찬란하게 떠오르는 브니엘의 해돛이를 바라보는듯 흥분되지만 아직도 안심은 되지 않습니다. 아직도 '하나님, 이건 아니쟎아요' 라고 부리던 땡깡을 거둘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아직도 세르게이와 나쟈와 어린 두 자녀, 김동학 선교사님을 위한 기도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슴저린 절묘한 감동 기도를 하시는 그 분의 깊은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아직도... 아직도... 함께 기도해 주신 모든분! 사랑합니다... 영원히...
구름낀 하늘에서 브니엘의 해돛이를 바라보는 기분으로,
곽동원
